일간검경

교도관의 비애

일간검경 | 기사입력 2024/06/29 [18:33]

교도관의 비애

일간검경 | 입력 : 2024/06/29 [18:33]

 




법무부 청소년범죄예방위원

정읍교도소 교정공무원 안상현

 

 

 

 

 이 글이 게재되어 누군가가 읽을 수 있다면, 법무부 교정본부가 언론보도 예정 정보 보고를 잘 받았고 이를 문제 삼지 않았다는 증거다. 교정공무원은 자유로이 기고 및 인터뷰를 할 수 있지만, 교정행정 관련 기고를 할 시에는 사전에 상부에 보고 및 허가를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강조하건대, 필자의 글은 교정공무원의 인권과 복지 증진을 위해 평소 개인적으로 품었던 생각을 써 내려간 것이며 교정공무원 전체의 입장을 표하거나 교정 수뇌부의 의사를 대리하여 표명한 것이 아님을 밝혀둔다. 

 

 

 나는 15년 6개월 동안 교도관으로 일했다. 2년 6개월 후, 명예퇴직을 할 계획인데 힘들고 더디게만 간 것 같은 과거 속에서도 수많은 깨달음과 배움이 있었다. 강산이 세 번이나 변했는데 (요즘은 과학기술 및 건축술의 발달로 강산이 5년마다 변한다는 설도 있다) 어찌 깨달음과 배움이 없었겠으며 그 깨달음과 배움의 깊이가 어찌 얕을쏘냐? 누가 뭐라 해도 그 귀한 깨달음을 교정직 후배들에게 잘 전수해주고 조금이라도 나은 근무 여건을 조성하는 데 일조하고 공직을 끝내고픈 소망이다. 

 

 

 연일 36도를 오르내리는 폭염의 기세가 무섭다. 죄 짓고 들어온 수용자들도 운동권은 보장받아야 하기에 주말 제외하고 월화수목금 매일 운동을 하는데 이를 관리·감독하는 교도관 역시 더위에 지치고 땀은 비 오듯 쏟아진다. 비록, 운동근무자실이 있긴 하나 개청 이후 9년 동안 에어컨 냉매 충전·교체가 되지 않아 있으나 마나고 전문 청소도 한 적이 없어 각종 세균이 호시탐탐 나를 노리고 있다. 

 

 이를 복지과장과 보안과장에게 보고하였고 몇 년 전부터는 친분 있는 복지과 직원에게 수시로 상황을 전하였으나 돌아오는 답은 한결같았다. 바로 ‘예산 부족’. 연초에 말하면 예산이 아직 안 내려와서 해줄 수 없고 연말에는 예산을 다 소진해서 해줄 수 없단다. 특히 올해는 과밀수용과 수용 환경 개선에 예산을 우선 사용하라는 상부 지침이 내려와서 직원 복지 관련 사업은 더더욱 어렵다는 것이 복지과장의 답이다. 설명은 들었으나 가슴 속엔 비애가 가득하다. 수용시설 개선도 분명 필요하겠으나 직원 근무 여건의 현실도 윗분들이 같은 잣대로 관심을 기울일 수는 없는 것인지 묻고 싶다. 

     

 답답해도 어쩌겠는가? 예산 편성권과 정책 기안권은 내게 없으니 그저 묵묵히 따를 뿐이다. 이런 열악한 환경에서도 전국 1만 7천 교도관은 공정한 법 집행과 교정·교화의 소임을 완수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 국가의 돈은 항상 부족하고 써야 할 곳은 언제나 많은 법인데 이 불가능한 조화를 맞춰야 하는 담당자들도 오죽 힘들겠는가? 법무부뿐 아니라 타 직렬 공무원들이 처한 상황도 대동소이할 것이라 본다. 아무쪼록 국가 경제도 나아지고 공무원 처우 개선도 이루어져 유능한 인재들이 예전처럼 공직의 문을 열심히 두드릴 수 있었으면 한다.   

 

   

 1995년 소위 ‘풀뿌리민주주의’라는 지방자치제가 도입된 이후 여러 병폐가 나타났는데 가장 심각한 것은- 인기 유지와 재선에만 눈이 먼 자치단체장들의 포퓰리즘 출혈 경쟁과 과도한 민원 서비스 설정이다. 공직자와 민원인 모두 동등한 입장에서 상호 존중과 배려가 실천되는 선진사회가 도래할 줄 알았는데 어느 순간, 민원인은 갑이 돼버리고 공무원은 을이 돼버린 느낌이다. 생각 없이 올린 게시판 글 하나에 직장이 발칵 뒤집히고 친절하게 응대해도 민원인이 불만족했다면 각종 협박과 괴롭힘에 시달리기 일쑤이며 악성 민원을 많이 제기하면 할수록 자기의 격이 높아진다고 보는 이들도 많다. 물론, 정말로 민원인에게 불친절하게 대하고 신속히 처리해야 할 업무를 태만했다면 그 어떤 불이익을 받아도 좋으며 공직자의 자질이 없으니 타 직장을 알아보는 게 맞을 것이다. 그러나 계속되는 호의와 친절을 권리로만 인식하는 일부 악성 민원인은 명심해야 할 것이다. ‘내가 받았던 호의와 친절은 절로 온 게 아니라 누군가의 헌신과 희생으로 받은 선물임을.’

 

 

 교정행정 서비스는 5170만 전 국민이 공평하게 받아야 한다. 0.1%의 범죄자와 0.4%에 달하는 그 가족, 지인뿐만 아니라 선한 마음을 잃지 않고 살아가는 99.5%의 비범죄자 일반인 모두가 그 서비스의 공정한 수혜 대상이 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고로, 수용자의 인권과 복지에만 치중하는 교정행정 서비스는 우리가 지향해야 할 것이 절대 아니다. 국민의 법 감정에 부합하고 상식을 잃지 않는 선에서 교정행정 정책은 수립되고 집행되어야 한다. 

 

 2005년 7월부터 공무원에 대한 완전 주 5일제가 시행되었다. 공무원 주 5일제 근무 시스템은 이후 전 사회 영역으로 도입되었으며 주말에 충분한 휴식권을 보장받은 근로자는 그만큼 노동 생산성과 삶의 질이 높아져 대한민국을 선진국으로 도약시키는 일등 공신이 되었다. 

 

 허나, 안타깝게도 아직도 주말을 제대로 쉬지 못하는 공무원이 있다. 바로 교정직 공무원(교도관)이다. 토요접견 제도를 아직도 없애지 못했기 때문인데 2005년부터 20년째 주말의 반쪽을 포기하고 근무해야 하는 전국 교도관이 부지기수(不知其數)다. 수용자 가족과 지인의 편의를 위해서라는 명분인데 시대 상황에도 맞지 않고 공무원 복무 규정에도 어긋난다. 수용자 접견을 공무원 복무규정 근무일이 아닌 토요일에 해주어야 할 의무가 법령에 없음에도 2005년 인권위의 권고를 수용하여 지금껏 해주고 있는 것이다. 어느 공공기관이 민원인의 편의를 위하여 막대한 국가 예산을 들여 토요일마다 행정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가? 

 

 

 ‘할많하않’(할말은 많지만 하지 않겠다)이라는 신조어가 있다. 나 역시 ‘할많하않’의 신조로 조용히 살고 싶었으나 그러지 못함을 슬퍼할 수밖에 없다. 가만히 있으면 중(中)이 아니라 상(上)까지도 가는 게 공무원 세계인데 이 현실을 알리고 공론화시켜야 할 책무를 느꼈기 때문이다. 

 

 

 인터넷 화상접견, 스마트 접견, 공중전화, 검열 없는 자유로운 서신 왕래... 현재 수용자의 접견·교통권은 절대적으로 보장되고 있으며 토요 접견을 굳이 하지 않아도 수용자 인권과 수용자 민원인 편의 제공은 다른 방식으로 얼마든지 실천할 수 있다. 참고로 「2024년 교정통계연보」 자료를 인용해보면, 2023년 한 해 교정시설에서 이루어진 총 접견 건수는 무려 2,123,222건이다. 교도관이 충분한 휴식을 누리지 못하고 교도관의 인권이 소중히 여겨지지 않으면 <수용자의 교정교화와 건전한 사회복귀를 도모함을 제 1조 (제 1의 원칙)로 삼고 있는 ‘형의 집행 및 수용자의 처우에 관한 법률’은 말 그대로 유명무실(有名無實)일 뿐이다. 

 

 

 스마트폰으로 설정해놓은 명예퇴직 D-데이 숫자가 어제 875에서 오늘 874로 줄어 있다. 남은 2년 반. 정말 할많하않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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